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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픽션

톨스토이 단편선

by choco 2020. 6. 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인디북 | 2019.?~2020.6.6

작년 어느날 읽다가 잠시 덮어뒀는데 이번 연휴에 놀러가서 마무리를 지었다.

반절 정도의 내용은 어릴 때 읽었던 톨스토이 단편 동화(?) 모음집에 있던 내용들이다.  어릴 때 읽었음에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바보 이반.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이반에게 크게 공감하거나 동화되지 못하는 걸 보면 난 어린 시절부터 자본주의 때가 많이 묻었었나 보다.  ㅎㅎ  바보 이반 번역에서 좀 의아한 게, 이반 형제들을 망치려는 그 꼬마악마들이 구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장면에서 이반의 인사가 하느님께서 어쩌고 하는 축복이어서 악마들이 소멸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번역에선 그냥 잘 가라는 인사를 하니 뜬금없이 사라지는 거라 좀 뜨아 했다.    

대강 아는 이야기들임에도 이 책을 다시 잡았던 이유는 제일 첫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때문이었다. 분명히 어릴 때 재밌게 읽었는데 중간중간 이가 빠진 내용이 가물가물한 게 궁금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12편의 단편, 혹은 민화를 끝을 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톨스토이가 말년에 굉장히 종교적으로 변화했다더만 그 심경과 사상이 고스란히 아주 대놓고 표출된 게 바로 이 책의 내용이지 싶다.

혁명 이전의 러시아가 아주 신심이 깊은 사회였고, 그래서 그런 착취와 폭정이 가능했다던 게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보나 에피소드 설정에서 아주 확연히 드러난다. 악마와 신의 섭리가 아무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녹아내려있다.  설정과 등장인물과 내용만 바뀌었을 뿐이지 12편의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신의 뜻에 따라 선하게 순종하며 살아야한다는 걸 팍팍팍 강조하고 있다. 종교적인 것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에겐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메시지들이지 싶음.  

인간은 정말 극에서 극으로 간다고,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방탕한 삶을 제대로 즐긴 러시아 귀족이었던 톨스토이의 말년이 이렇게 종교 집단의 지도자 같은 신심과 청빈으로 갔다는 게 일견 희한하기도 했다. 그 극적인 변화의 스펙트 덕분에 다양한 문학을 즐길 수 있는 건 나와 같은 후세 독자들에겐 행운이고, 죽어라 그 비위 맞춰주며 뒷바라지 했더니 극과 극을 오가며 평생 속썩인 남편 때문에 천하의 악처 누명을 쓴 그의 아내 소피아 입장에선 속 터지는 일이었을 테고.

여튼 오랜만에 숙제 하나 또 해결.  재밌었다.  이제 내 체력이나 집중력으로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는 건 불가능이겠지?  톨스토이 기준으론 비교적 짧았던 부활은 어찌어찌 가능할 것도 같지만...  역시 뭐든 때가 있다고 책은 어릴 때 읽어야 한다.  그때는 허영심 때문에라도 어찌어찌 읽었구만 이제는 그게 안 되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