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메인에 뜬 이름 보고 놀라서 클릭했더니... ㅠㅠ
내게 음악이란 학문이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며 철학, 미술 등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어우러져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주신 분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시면서 이 얼마나 정교한 건축적인 구조를 가진 매력적인 작품인지를 알게 해주셨고, 언젠가 이 작품의 구조를 내 음악에 넣어 만들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꿈도 품게 해주셨었다.
내 시간만 멈춰 서고 나 혼자만 뒤떨어지고 있는 것 같던 그 힘든 시기에 제안해주셨던 쇼팽 음악원 장학생 추천은... 결국 갈 수 없었지만 정말 나 자신에게 큰 위로였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주는 자긍심이었다.
맏딸의 의무를 팽개치고 자기만 아는 천하의 못된 X이 되더라도 철판 깔고 쇼팽 음악원으로 훌훌 갔더라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은 포기한 이후로도 꽤 오래 품었었다. (냉정하게, 갔어도 크게 되진 않았을 거라는 건 인정. 그렇지만 안 간 것과 못 간 것은 다름)
작곡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내내 참 많이 예뻐해주셨던 그 기대에는 결국 보답하지 못 했다. 그 사실이 창피하고 죄송해서 음악회 같은 곳에서도 멀찌감치 지켜보며 피했던 못난 제자였지만 정말 내 음악 인생에서 내 스승님이라고 생각하는 단 두 분 중 한 분.
다른 한 분은 오래 전 떠나셨고... 선생님도 이제 떠나셨구나.
당시 선생님 댁이었던 은마 아파트 근처의 그 오래된 칵테일 집에서 선생님 모시고 다른 작곡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음악 얘기를 했던 그 순간이 그립다.
절친 펜데레츠키와 조우해 음악 얘기를 하고 계시겠구나...
영면하시길.
보잘 것 없는 음악도였지만 선생님 제자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