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차 태국음식 + 태국 싱하 맥주 -> 2차. 바로 옆집에 있는 로바다야끼에서 모듬 구이 + 조개탕+ 알탕 + 맥주 혹은 정종 -> 3차. 차+쿠키로 입가심을 한 뒤 전열을 가다듬어 염소젖 치즈와 크래커, 흑빵, 살라미 등을 곁들여 마신 와인이다. 오늘 출근을 해야하는 사람이 2이나 있었음에도 2시반까지 수다 떠느라 정신 없었음. 아마 오늘이 휴일이었으면 몇병 더 까고 해가 뜨는 걸 함께 지켜봤을 체력들이었다. ㅋㅋ
라벨에 써진대로 읽어보자면 라 렝띠에르 생떼밀리옹 2004년산. 이제 2년을 넘긴 와인이니 늙어서 힘빠졌을 리는 절대 없고, 또 생떼밀리옹이니 아무리 망해도 평균은 하려니 믿고 집에 있는 것 중에 대충 무난해보이는 걸로 선택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심혈을 기울인만큼의 선택이었다.
처음 입에 닿는 프루티한 느낌이 강하지만 의외로 강렬했던 첫맛에 비해 이어지는 두툼한 잔향이나 여운은 비교적 적다. 양념이 강한 묵직한 식사류와 함께 곁들였다면 조금 약하지 않았을까 싶은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와인.
전체적인 볼륨감이 약하긴 해도 상큼한 과일향이 맴도는 것이 별다른 안주 없이 와인만 마셔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런 느낌이다. 곁들인 가벼운 치즈나 크래커에도 아주 잘 어울려서 술이 그야말로 술술 넘어가는 상황. 한 1년 정도 더 뒀더라면 구조가 좀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해보긴 했지만... 다시 구입해서 1년을 더 묵히고 싶을 정도로 많이 매력적이진 않은 고로 패스.
살라미나 염소젖 치즈처럼 풍미가 강한 안주에는 와인이 조금 밀리는 느낌. 그 안주에는 메독이나 부르고뉴쪽의 무게감 있고 오크향이 풍부한 와인을 마셔주는 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잠깐 하긴 했지만... 안주는 살짝 입가심만 하는 정도로 곁들인다면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
어제 오픈한 염소젖 치즈의 유통 기한을 감안해서 조만간 다른 모임이라도 만들어서 치즈를 깨끗이 치워줘야겠다. 내일 공연 보고 들러서 술 한잔 하고 가라고 꼬시려고 했더니... 저놈의 눈이 모든 걸 망치는군. 냄새에 엄청 민감한 우리 부친은 염소젖이니 산양젖이니 절대 안 키우시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