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 주류성 | 2022.6.?~9.18
80~90년대 학번 상당수 음악도들에게 강석희, 이강숙, 이종구 선생님은 음악과 지성의 상징이랄까, 구름 속에 있는 근사한 존재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수십 명 중에 존재감 적은 한명이지만 이분들이 쓴 책으로 공부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는데... 이종구 교수님은 강의는 들어보지 못하고 책으로만 뵈었던 분. 우리가 늙어가는 것만큼 이분들도 돌아가시고 은퇴하시고 나도 그 동네를 떠나면서 잊고 있었다가 오랜만에 책으로 다시 만났다.
지금 세대의 음악인들을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20세기의 예술가들은 대체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넓게 전문지식을 아우르는 전문교양인, 르네상스맨이었다. 내가 대학원 때 우리 수업을 수학과 대학원생이 수강 신청해 듣기도 하고 -위상 기하학, 위상함수 어쩌고 하는, 아마 이 생에선 내 머리로 못 알아들을 얘기를 최소한 그때 귀동냥은 할 수 있었음- 일부 교수님들의 과학이나 인문학적 전문성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걸 예술 교육계에선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21세기에도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명박 때 다 박살을 내버렸고 그 후유증은 한국 예술은 물론이고 교육 전반에 치유 불가능하게 남았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
각설하고 이 책은 멸종 위기인 그 통섭적인 르네상스맨의 유산이라고 하겠다. 책의 제목을 보면 백제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백제사부터 시작해서 백제 음악, 악기, 백제 문학 + 백제에서 파생된 일본 문학 일부까지 아우르고 있다.
음악사에 앞서서 우리 민족의 기원부터 백제까지 역사를 -이 부분은 강단 사학의 입장에선 좀 허무맹랑하고 논란의 여지가 큰 내용이긴 함- 중국와 일본, 한국의 사료를 비교해서 정리해주고 있다. 유명한 식민사학자 이병도와 그의 계파들이 일본의 식민사관에 입각해 한반도에 국한시킨 고조선사를 비롯한 한국 고대사를 바로 잡으려는 문정창 선생 등의 학설과 내용 등을 소개하면서 백제의 범위를 정리하고 음악사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깐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차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는 (그외의 역사가들에겐 기정사실화된) 백제의 중국 대륙 진출= 혹은 대륙 백제, 한반도 백제, 열도 백제 이 세곳에서 펼쳐지는 백제의 음악을 따라나서는 여정은 악기와 음악.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참 흥미진진하다.
백제금동대향로에 새겨진 문양들에 그렇게 많은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는줄 몰랐다는 게 창피할 지경. 다음에 국박에 가서 모조품이라도 자세히 좀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음.
예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이영희 작가의 '노래하는 역사'의 해석을 차용한 부분을 보면서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잠시 감회를... 요기 언급되는 액전왕, 제명여제 등의 이야기를 소재로 최인호 작가의 소설을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잃어버린 왕국'
이 백제 그리고 음악은 책에 담긴 내용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내게는 많은 추억을 불러오는 독서였다.
한국은 소위 환빠 때문에 멀쩡한 재야사학까지 유사사학으로 묶여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개인적으로 참 아쉬움. 환빠로 묶이지 않으려고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아차 하면 질색팔색하는 이병도에 쏠리게 됨. 그 균형을 잡아나가는 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선 쉽지가 않고 그게 참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