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 쓸 체력도 안 되고 사실 말이 필요없었던, 기대 이상의 환상적인 공연이라 몇가지 느낌만 간단히 정리하는 걸로 감상을 끝내야겠다.
1. 아크람 칸의 재발견. 2004년인가 2005년에... 시 댄스에서 확실하게 나를 고문해주셨던 인도 출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 번뜩이는 재능은 인정하지만 내가 소화하기엔 버거운 요리를 차려낸다고 느꼈다. 그래서 예매를 하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엄청나게 하고 갔었다.
그.런.데. 너무나 재미있다. 75분이라는 시간이 언제 어떻게 가버렸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고 웃고 감탄하는 와중에 시간은 유수처럼~ 그리고 실비 길렘이라는, 주위의 무용수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저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에 전혀 뒤지지 않는 존재감과 언밸런스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그 조화는 정말 놀라웠다.
왜 서구 무용가들이며 안무가들이 아크람 칸에게 열광을 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2, 아크람 칸과 실비 길렘의 조화가 어우러진 이 신성한 괴물들이란 작품의 이미지를 내게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물'이 되겠다. 때로는 파도치듯 격동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졸졸 흐르거나 거의 움직이지 않는 고인 모습. 그리고 길렘과 칸이 찰리 브라운 얘기를 한 다음 줄넘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고용한 연못 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햇살의 반짝거리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절대 단절되지 않고 계속 굵게, 가늘게, 빠르게, 잔잔하게 굽이치면서 이어진다. 마치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
언어가 포함되는 무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그런 내 편견을 완전하 날려주는 조화였다. 발레, 현대무용, 카탁 등의 원소들이 튀지 않고 화학 작용을 해서 완전히 어우러진 결과물이 신성한 괴물들인듯.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합물이었다.
3. 실비 길렘. 기다린 보람이 있었고 또 하루종일 뺑이 친 이 추운 날 찾아간 보람이 120%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지. 자기 신체에 대한 조절 능력은 무용수로서 기본이지만 불행히도 그걸 제대로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녀처럼 제대로를 넘어 경탄이 나오도록 완벽한 움직임은 내 기억에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눈앞에서 보여지는 동작들에 감탄을 하는 동시에 더 부럽고 놀라운 것은 어떤 움직임이건 안무가가 요구하면 가능하겠구나라는 확신. 용량 무한의 춤추는 기계, 혹은 춤추기 위해 태어나고 훈련받은 육체를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문득.... 니진스키와 길렘이 동시대에 살았고 길렘이 니진스키를 위해 춤췄다면 니진스키는 어떤 봄의 제전을 안무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다. 그의 구상을 구현할 능력이 부족했던 없었던 마리아 필츠를 위해 쉽게 안무했다던 그 희생의 춤이 두고두고 역사에 회자되는 것을 볼 때 길렘이라는 도구(?)가 있었다면 샤틀레 극장에 광란과 폭동이 아니라 집단 자살과 기절 소동까지 가능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공상이지만 그래도 오늘 길렘을 보면서 그 비운의 천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기대를 갖고 가면서도 동시에 두근거림이 실망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4. 시바, 크리슈나, 카탁과 어우러진 라가와 남인도의 음계들. 오랜만에 예전에 대학원에서 배웠던 인도 음악 노트와 책들을 꺼내서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12음계로 귀를 훈련받은 나로서는 그저 막연하게 느낄 따름이지만 라가의 22음계로 짐작되는 그 음을 구현해내는 가수가 정말 존경스러웠음.
마지막으로 길렘 여제 폐하. 오랜 기다림의 끝을 이렇게 기쁨으로 마무리 지어줘서 정말 감사~ 내가 늙어서 나중에 내가 봤던 공연을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 당신 춤을 무대에서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마땅하다고 잘난 척을 꼭 할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