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봤다~
처음 봤을 때의,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고 몸살이 나는 정도의 충격은 없었지만 만족한 저녁.
에이프만과 내가 다 죽고 없어지고 우리 뒷세대가 에이프만에 대해 논한다면 이 차이코프스키는 분명 그의 대표작 반열에 오를 것 같다.
기억하던 장면과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다시 살아나면서... 과거와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국내 초연을 봤을 때 썼던 감상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탕에 들어가 있어 그냥 멍했다는 게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강렬함을 기대하고 본 2006년엔당연히 그만큼의 쇼크는 있을 수 없고 비교적 냉정하게 캐릭터와 춤을 분석하면 봤다고 해야하나... 감정적인 즐거움은 덜했지만 치매를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자극은 더 있었다.
에이프만은 남자와 여자보다는 남자와 남자를 엮는 구도에 정말 재능을 발휘한다. 대립의 강렬한 아우라. 비슷한 색깔과 성격을 가진, 동등한 에너지가 충돌하는 효과는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가 엮어내는 상승 작용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그 남성성의 충돌이 가장 매력적으로 구현되는 작품이 차이코프스키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가끔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싶을 정도의 섬세한 구조와 건축적인 구도. 1막에서 악마 로토바르트로 분장하고 나타난 차이코프스키의 분신과 차이코스프키, 악마들의 춤, 백조들까지 엮어지는 군무 장면은 말 그대로 눈으로 푸가였다.
오른손 멜로디와 왼손 베이스라는 철저한 고전 음악의 역할 분담 이전의 음악. 왼손과 오른손이 동등하게 짜여 맞물리는 그 탄탄한 구조는 작곡으로도 어렵지만 춤으로 보여주는 건 더 어렵다. 시도는 무수히 많이 있었지만 내가 본 중에서 성공이라고 느낀 건 스포얼리와 에이프만 뿐이다.
걸러지지 않는 즉흥성을 경멸하도록 교육 받은 배경 탓도 있겠지만 난 정교한 구조를 거의 광신적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1막은 다시 한번 만족 또 만족.
두번째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번 차이코프스키를 내가 이렇게 침착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유리 스메칼로프 때문이기도 하다.
초연 때 갈리차닌은 말 그대로 차이코프스키였다. 동성애적인 자아와의 충돌에 고뇌하고 그걸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불행한 천재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항을 포기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 때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아리게 하는 불쌍한 인간이었다. 그 자체가 차이코프스키란 인간으로 느껴지고 무용수와 캐릭터의 분리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스메칼로프는 차이코프스키를 춤췄다. 아무리 박하게 평가한다고 해도... 정말 멋졌다. 그는 춤을 잘 춘다. 신체 조건도 뛰어나고 매력도 있다. 그리고 주역 무용수로서 필수적인 카리스마도 분명이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다. 오늘 내게 그는 차이코프스키 역할을 춤추는 유리 스메칼로프였다.
분신을 연기한 알렉세이 투르코와 춤이나 외모 등 모든 스타일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그런지 초연 때의 일치감도 솔직히 좀.... 항상 과거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라지만 공연에 있어선 난 냉정한 인간이다. 분신과 차이코프스키는 분열된 자아로 확연히 구별되는 동시에 하나라는 동질성이 와닿아야 한다. 외모까진 아니더라도 분위기만큼은 통일되는 캐스팅이 필요하다고 느꼈음.
베라 아르부조바의 폰 메크 남작부인은 그때도 멋졌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멋지심~ 그 요요한 카리스마에다 춤도 잘 추고 몸매까지 죽이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신은 정말 불공평하다. 그렇게 군살 한 점 없으면 절벽이어야 공평하거늘... 그 날씬한 몸매에 들어갈 곳과 나오는 곳이 확실하게 곡선까지 하사하다니. ㅈㅈ
2막은 1막의 탄력으로 순조롭게 진행. 워낙에 볼거리가 많고, 또 에이프만의 특기 중 하나인 소품의 기발한 이용이 돋보였다.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더 즐겁다는 게 늘 맞는 건 아니지만 차이코프스키란 작품만큼은 진리다. 1막 시작에 등장하는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잠자는 숲속의 악역, 카라보스와 그녀의 추종자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페이드의 여왕 등 톡톡 튀어나오는,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의 정체를 맞추는 즐거움은 반복해도 즐겁다.
컨디션과 모든 제반 여건이 최악이었음에도, 30일 공연의 실망감을 상쇄하는 즐거움과 몰입이 가능했다.
_M#]
공연과 별 관계없이 혼자 했던 잡생각.
오늘도 마지막에 나오신 에이프만 선생께 박수 갈채 집중~
왜 저렇게 할아버지가 됐냐고 저번에 동행자들과 서운(?)해 했는데... 오늘 검색을 해보니 만으로 60살. 할아버지가 맞군. 그래도 너무 귀여운 할아버지. 저 통통하고 작달막한 몸매에서 어떻게 그런 드라마틱한 상상이 쏟아져 나오는지.
평이 그다지 좋지 않은 WHO'S WHO 지만 즐겁게 기다려주기로 했음~
완전 에이프만 주간이군.
처음 봤을 때의,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고 몸살이 나는 정도의 충격은 없었지만 만족한 저녁.
에이프만과 내가 다 죽고 없어지고 우리 뒷세대가 에이프만에 대해 논한다면 이 차이코프스키는 분명 그의 대표작 반열에 오를 것 같다.
기억하던 장면과 잊고 있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다시 살아나면서... 과거와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국내 초연을 봤을 때 썼던 감상을 찾아보니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탕에 들어가 있어 그냥 멍했다는 게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강렬함을 기대하고 본 2006년엔
에이프만은 남자와 여자보다는 남자와 남자를 엮는 구도에 정말 재능을 발휘한다. 대립의 강렬한 아우라. 비슷한 색깔과 성격을 가진, 동등한 에너지가 충돌하는 효과는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가 엮어내는 상승 작용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그 남성성의 충돌이 가장 매력적으로 구현되는 작품이 차이코프스키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가끔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싶을 정도의 섬세한 구조와 건축적인 구도. 1막에서 악마 로토바르트로 분장하고 나타난 차이코프스키의 분신과 차이코스프키, 악마들의 춤, 백조들까지 엮어지는 군무 장면은 말 그대로 눈으로 푸가였다.
오른손 멜로디와 왼손 베이스라는 철저한 고전 음악의 역할 분담 이전의 음악. 왼손과 오른손이 동등하게 짜여 맞물리는 그 탄탄한 구조는 작곡으로도 어렵지만 춤으로 보여주는 건 더 어렵다. 시도는 무수히 많이 있었지만 내가 본 중에서 성공이라고 느낀 건 스포얼리와 에이프만 뿐이다.
걸러지지 않는 즉흥성을 경멸하도록 교육 받은 배경 탓도 있겠지만 난 정교한 구조를 거의 광신적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1막은 다시 한번 만족 또 만족.
두번째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번 차이코프스키를 내가 이렇게 침착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유리 스메칼로프 때문이기도 하다.
초연 때 갈리차닌은 말 그대로 차이코프스키였다. 동성애적인 자아와의 충돌에 고뇌하고 그걸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불행한 천재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항을 포기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 때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아리게 하는 불쌍한 인간이었다. 그 자체가 차이코프스키란 인간으로 느껴지고 무용수와 캐릭터의 분리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스메칼로프는 차이코프스키를 춤췄다. 아무리 박하게 평가한다고 해도... 정말 멋졌다. 그는 춤을 잘 춘다. 신체 조건도 뛰어나고 매력도 있다. 그리고 주역 무용수로서 필수적인 카리스마도 분명이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다. 오늘 내게 그는 차이코프스키 역할을 춤추는 유리 스메칼로프였다.
분신을 연기한 알렉세이 투르코와 춤이나 외모 등 모든 스타일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그런지 초연 때의 일치감도 솔직히 좀.... 항상 과거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라지만 공연에 있어선 난 냉정한 인간이다. 분신과 차이코프스키는 분열된 자아로 확연히 구별되는 동시에 하나라는 동질성이 와닿아야 한다. 외모까진 아니더라도 분위기만큼은 통일되는 캐스팅이 필요하다고 느꼈음.
베라 아르부조바의 폰 메크 남작부인은 그때도 멋졌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멋지심~ 그 요요한 카리스마에다 춤도 잘 추고 몸매까지 죽이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신은 정말 불공평하다. 그렇게 군살 한 점 없으면 절벽이어야 공평하거늘... 그 날씬한 몸매에 들어갈 곳과 나오는 곳이 확실하게 곡선까지 하사하다니. ㅈㅈ
2막은 1막의 탄력으로 순조롭게 진행. 워낙에 볼거리가 많고, 또 에이프만의 특기 중 하나인 소품의 기발한 이용이 돋보였다.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더 즐겁다는 게 늘 맞는 건 아니지만 차이코프스키란 작품만큼은 진리다. 1막 시작에 등장하는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잠자는 숲속의 악역, 카라보스와 그녀의 추종자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페이드의 여왕 등 톡톡 튀어나오는,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의 정체를 맞추는 즐거움은 반복해도 즐겁다.
컨디션과 모든 제반 여건이 최악이었음에도, 30일 공연의 실망감을 상쇄하는 즐거움과 몰입이 가능했다.
_M#]
공연과 별 관계없이 혼자 했던 잡생각.
오늘도 마지막에 나오신 에이프만 선생께 박수 갈채 집중~
왜 저렇게 할아버지가 됐냐고 저번에 동행자들과 서운(?)해 했는데... 오늘 검색을 해보니 만으로 60살. 할아버지가 맞군. 그래도 너무 귀여운 할아버지. 저 통통하고 작달막한 몸매에서 어떻게 그런 드라마틱한 상상이 쏟아져 나오는지.
평이 그다지 좋지 않은 WHO'S WHO 지만 즐겁게 기다려주기로 했음~
완전 에이프만 주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