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 빨리도 쓴다. 쓰려고 앉으니까 좀 쑥스럽기까지... 그래도 바탕화면에 있는 저 유럽 2005 폴더를 지우려면 써서 치워야지.
9월도 되지 않아서 매진이 되어버린 통에 암표라도 구하자~ 그러고 떠나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그야말로 딱 한장 남은 마지막 표를 잡아서 본 공연이다. 내 생일이라고 하늘이 선물을 해준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 ㅋㅋ
무대와 내가 앉았던 자리. 영화에서나 보던 박스석으로 턱시도 입은 아저씨가 에스코트를 해서 자리로 안내해주는 호사를... ^^
이 박스에 많이 봐줘야 20대 초반인 아가씨와 아무리 적게 잘라도 -겉보기가 아니라 대화 내용으로 계산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 네덜란드인 관광객 커플, 미국에서 온 엄청 수다스런 아줌마와 함께 앉았다. 이 미국 아줌마는 이혼하고 아들하고 둘이 사는 사람인데 -난 안 물었다. 자기가 다 얘기했음. -_-;-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휴가로 파리에 와서 발레까지 본다는 사실에 엄청 흥분한 상태. 나와 수다를 떨고 싶어했지만 듣는 것과 가벼운 맞장구는 가능해도 같은 수준의 대화는 불가능한 관계로 좀 있다 들어온 그 커플의 남자와 수다 X 수다. 남자와 동행한 아가씨의 영어실력은 나와 비슷한 관계로 우리는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시점에서 감탄사만 흘려주면서 공연이 빨리 시작되기만을 기원. ^^;
파리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공연 관람 등 문화 생활에 대한 국가적인 배려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본 어느 나라보다도 싼 편에 속함. 이 표값이 70유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국에서는 이 가격이면 저 3-4층 어딘가 쯤에 앉아야 한다. 빈슈타츠오퍼에서도 이보다 좀 못하거나 비슷한 자리를 100유로 줬음.
워낙 공연을 본 지 오래되서 자세한 건 기억에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기대를 무지하게 했던 이유는 당시 최연소로 에뜨왈이 되어서 화재만발이었던 가니유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것. 파리 오페라의 영원한 에뜨왈이자 초대형스타인 니꼴라 르리쉐의 안무작이라는 거였다.
결과를 얘기하자면 이날 가니유는 부상 때문에 안 나왔고... (ㅠ.ㅠ) 르리쉐는 안무보다는 춤을 추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좀 냉정하게 비교를 하자면 예전에 일본인으로 추측되는 엄~청 허접한 안무가의 작품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공연한 걸 보면서 '허접한 안무는 아무리 뛰어난 무용수들이 출연해서 커버가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날 공연을 보면서 딱 그 감상이 떠올랐음.
비발디의 사계를 기본으로 중간중간 테크노적인 전자음악을 사용했는데 그다지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칼리굴라라는 연극 대본을 기초로 했다는 건 짐작이 되지만 춤으로는 역시나 조각조각난다는 느낌. 칼리굴라야 워낙 내내 나오니까 주인공이구나~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굉장히 미약해서 전반적으로 빈약하고 아이디어 부재라는 것이 내 감상이었다.
그렇게 냉소적으로 무대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었음. 이게 나중에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걸작이 되면 난 통찰력이나 심미안이 부족해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명작을 홀대한 안목없는 다수 대중이 되겠구나 라고.
나보다 수준이 다들 높으신지 의외로 파리 관객들의 반응은 괜찮았다. 니콜라에 대한 애정인지 아니면 초연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음. 올 시즌에도 이 작품을 올리는 걸 보면 내가 모르는 미학적인 가치나 작품성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라고 스스로 최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