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난 주가 엄청 피폐하긴 했나보다. 350여 페이지의, 굉장히 술술 넘어가는 글이었음에도 장장 1주일을 들여서 겨우 끝을 냈음.
아마도 이 책이 과학에 발을 살짝 들이밀고 있다는 것도 나의 느린 독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작년 연말에 읽은 '야생거위와의 1년'을 동물생태학으로 분류해 과학으로 쳐주면 거의 10달만에 읽은 과학 관련 책이고 그걸 과학서적이 아니라고 하면 2000년 '원소의 왕국' 5년전 읽은 책의 제목까지 기억하다니. 어느 인터넷 책 판매 사이트에 리뷰까지 올린 기억도 난다. ㅎㅎ 이후 처음으로 읽은 과학책이 됨.
수학과 철학 다음으로 담을 높이 쌓은 과학이란 동네와 잠시 교류의 물꼬를 트게 했을 정도로 이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 피크닉은 일단 제목부터 흥미를 자극했다. 원제는 Radar, Hula Hoops and Playful Pigs 라는데 저 훌라후프의 얘기는 화학과 연관되어 본문에서도 나옴.
조 슈워츠는 화학자다. 그러나 화학이 옛 연금술처럼 고고하고 심오한 학문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 현대인의 생활 전반이 화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늘 부딪히는 일상 생활의 물건과 광고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화학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 자신이 꽉 막힌 화학자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책 전반에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사이비 과학 대체의학이나 동종요법을 포함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돋보이나 그의 입장은 대체로 상당히 통렬했음 과 과학적 배경과 정체가 모호한 발명품에 대한 빙 돌린 비아냥거림. 정곡을 찌르면서도 웃음이 나오게 하는 마무리 부분의 위트는 매 쳅터를 끌낼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한국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한국에서의 연구 결과가 인용되는 것 역시 한국인으로서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였다. 과학이나 역사 관련 서구인의 책에서 한국=후진국=잘 모르는 나라가 아닌 걸로 묘사된 내용을 본게 얼마만인지. 사실상 처음인 것 같다.
재작년인가 읽은 미국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현대차를 타고 유명한 자동차들을 추월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 이후 가장 놀라운 한국관련 묘사였음. ㅎㅎ
이 책에서 펼쳐지는 화학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줄줄이 풀어놓기는 역부족. 여하튼 이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 피크닉을 열심히 읽은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사과와 비타민 섭취에 흥미를 보일 거라는 것만은 보증할 수 있다.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사과 관련 부분을 읽은 이후 요 며칠간 먹은 사과가 지난 9달 동안 먹은 양보다 많았다. 모두 합쳐서 2알이지만. ^^ 그리고 종합 비타민과 칼슘을 사서 꾸준히 먹어줘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사과 과수원 협회와 비타민 제조 회사들이 조용히 스폰서가 되서 추천도서로 권장해도 좋을듯. ㅋㅋ 사과나 한알 깍아먹고 나가야겠다.
책/과학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조 슈워츠 | 바다출판사 | 2005. 9.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