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로설을 전혀 안 읽은 건 아니지만 요즘은 통 재미있는 게 없다. 풀어나가기 따라서 빤~한 얘기도 얼마든지 재밌고 두근거릴 수 있는데 요 근래 출간작들은 그 맥을 놓친 느낌. 아니면 내게 권태기가 왔을 수도 있고.
간혹 집는 것도 실패가 많았고 또 감상을 끄적거리기도 지친 시절이라 읽고 넘겼는데 그나마 건진 책 중 하나다. 그 가뭄에 몰입을 줬다면 짧게라도 기록을 해주는 게 도리인 듯 싶어서 앉은 김에 끄적거려본다.
일단 내가 이서형 작가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부터 인정을 해야겠다. 한국 로맨스 작가 중에 드물게 서구적 로맨스 작가들의 끈적~한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서 그게 할리퀸 베끼기로 느껴지지 않는 자기화가 잘 되어 있는 작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나오는 책마다 초대박은 아니더라도 대박을 내주는 안정된 작가다.
이렇게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작가들의 특징이 캐릭터가 고정되기 쉽다는 건데... 출간작들을 빠짐없이 읽은 내가 볼 때 그건 사실이다. 푸른장미의 남자 주인공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묘사되는 분위기는, 단어와 이름, 장소의 차이가 있을 뿐 이전 작품들의 남주들과 아주 흡사하다. 모두 같은 성분을 가진 한 종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게 드라마거나 혹은 순수문학에서라면 매너리즘이니 작가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둥의 비판을 받을 사안일 수 있겠지만 로맨스라는 장르의 특징상 그 기조에 깔린 성분이나 재료가 같더라도 제대로 맛있게 차려만 내면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맛보다는 안정되고 익숙한 맛을 더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푸른장미는 이서형이라는 이름을 믿고 선택한 독자들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걸 다 갖고 있지만 외로운 남주와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게 자기 길을 개척해나가는 여주의 만남. 강렬한 끌림과 적당히 긴박감을 주면서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는 수준의 갈등, 화해. 단순하지만 깔끔하고 또 재미있다.
무지하게 머리 복잡하고 지치는 시간에 잠시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몰입할 수 있는 휴식을 줬다는 점에서 감사.
린다 하워드의 남주나 그 내용의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할듯.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둘이 상당히 비슷하다.
감상을 쓸 기력까진 없고 이외에도 괜찮게 읽었던 건 나인 작가의 '눈을 감으면'과 류은수(던가???) 작가의 '사랑 증오 그리고 복수' 아주 대조적인 내용인데 둘 다 재밌었다.
책/픽션
푸른 장미
이서형 | 신영미디어 |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