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예매 해놓은 걸 하나씩 찾아먹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데 이게 그 1탄.
마감이 다가오니 갑자기 안 오던 잠도 쏟아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사이클로 돌입이라 이것도 엄청 쓰기 싫지만 지금 안 쓰면 또 넘어가버릴 것 같아서 무리해서 앉았음. 그래서 간단히 단상만~
2년 전 이크람 칸이 실비 기엠과 내한했을 때 '신성한 괴물들'에서 받았던 120% 충족되는 그런 충만한 충격과 만족감을 기대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점수를 매긴다면 90점 정도? 그땐 너무 몰입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아예 의식되지 않았고 75분간의 공연이 끝났을 때는 누가 시간을 도둑질해 간 것 같았었다. 근데 이번엔 후반부에 가면서는 언제 끝나나 조금은 지루했었음. ^^;
이유를 찾자면... 춤을 보고 싶었던 내게 이 공연은 춤에 해당하는 움직임이 너무 적었다.
분명 아이디어도 좋았고, 줄리엣 비노슈는 배우로서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연극적인 장치들과 전 세계의 성인 남녀라면 모두 공감할 그 심리 코드들의 활용은 정말 탁월했다. 특히 함께 살게 된 남녀가 일상에서 겪는 충돌(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려놓지 않는 남자. ^^; 서로 쾌적한 온도의 차이 등등)은 반응 적은 한국 관객들조차도 배를 잡게 할 정도로 능숙하게 풀어냈다. 또 신성한 괴물들에서와 훨씬 더 정교하고 작품 전체와 잘 아우러지는 대사들을 그녀의 아름다운 딕션으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크람 칸이 무용수로서 갖고 있는 그 강렬한 에너지와 능력에 동등하게 반응하고 조화하고, 또 때로는 충돌해야 하는데... 뛰어나고 매력적인 배우이기는 하지만 아마추어 무용수인 줄리엣 비노슈의 한계가 너무 보였다고나 할까. 만약 실비 기엠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불꽃이 파닥파닥 튈 그런 강렬한 에너지파를 팍팍 때려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계속 느꼈다.
그렇지만 줄리엣 비노슈의 독백이나 대사를 치고 받는 부분에서는 흐뭇~+ 감동~
프랑스어 악센트가 강하면 알아듣기 정말 힘든데 프랑스어 악센트가 살짝 남아있는 영어를 구사해주니까 언어 자체가 정말 음악이고 매혹이다. 영어권 소설에서 '매혹적인 프랑스 악센트가 섞인 영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
춤이 부족해~ 춤을 좀 더 춰 주시오~ 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와 달리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게 매력이었을 것 같긴 하다) 음악, 무대 장치와 그 활용의 아이디어, 춤과 언어, 마임이 어우러져 표현해내는 남녀 관계의 그 신비랄까, 현실적인 모습들은 정말 재미있었음.
그리고 몰입에 대한 아쉬움 역시 2년 전 공연과 비교해서이지... 실상 중간중간 잠깐씩 지루해졌던 걸 제외하고는 무대 장치가 이동하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집중도가 높은 두 사람이었다.
2년 전 공연 안에서 아크람 칸과 실비 기엠이 각자 자신에 대해 고민이며 약점 같은 걸 고백을 할 때 실비 기엠이 아크람 칸에게 "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멋진 대머리야."라는 요지의 얘기(=위로?)를 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동감했지만 이번에 보면서 다시 한번 100% 동감. 나뿐 아니라 동행녀들 모두 "저런 남자라면 대머리라도 좋아~" 모드였음. ㅎㅎ;
아직도 둘이 같이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공연왔을 때 실비 기엠과 아크람 칸이 사귄다고 했는데... 처음엔 좀 뜨아~했지만 보면 볼수록 어울리는 것 같다. 어느 남자와 붙여봐도 마돈나처럼 남자가 실비 기엠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크람 칸이라면 여제 폐하의 그 거센 기에 전혀 눌리지 않고 서로 잘 맞춰서 살 것 같다.
공연 시작하면 절대 늦게 온 관객 넣어주지 않는 LG 아트센터의 운영에는 -그래서 나도 한번 1부 공연 놓친적 있지만. ㅠ.ㅠ- 양손을 번쩍번쩍 들어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3천원을 받아도 욕이 나올 정말 허접한 프로그램을 5천원이나 받아먹은 것에 대해서는 욕하고 있음. 종이질이며 크기, 내용 모두 포함해서 볼 때 2천원도 물가 감안해서 용서할 정도의 수준. -_-+++늘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친구들마저도 내가 5천원을 지불한 프로그램을 보더니 함께 공연 구경 다닌지 근 10년만에 처음으로 둘 다 구입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보리스 에이프만 공연 보러 가는데 그때 프로그램이 어떨지... 기대가 아니라 걱정이 심히 된다. 그리고 기대하던 유리 스메칼로프가 안 온다는 비보에 슬퍼하고 있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