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식 | 돌베개 | 2009.12.1-3
인터넷 뱅킹은 물론이고 현금인출기 마저도 절대 신뢰하지 않는 부친 덕분에 연말이 되면 은행 순례를 해야한다. -_-; 마음 같아선 이런 삽질을 왜 하냐고 외치고 싶지만 방 빼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속으로마 투덜투덜하면서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은행도 바빠서 가면 엄청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지난 주에는 철도 파업까지 겹쳐서 오가는 시간을 배로 들이면서 심부름을 다니다보니 책을 열심히 읽게 된다.
그렇게 은행 순례를 다니면서 끝낸 책 중 하나. 끊긴 삘도 이을 겸, 또 혹시라도 하나 건지는 게 있으면 좋고~라는 심정으로 잡았는데 두 가지 목적에는 그다지 부합하지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중국 역사 속의 청렴한 소수의 관리와, 엄청나게 많은 탐관오리 중에 대표주자들이 소개된다. 청백리와 탐관오리 할 것 없이 어떤 시대에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에 대해 일대기 적으로 서술을 해주고 또 중요한 사건이나, 그의 행각에 촛점을 맞춰 중점적인 소개가 들어간다.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로 한국에도 유명한 송대의 포증, 풍도, 범증, 임칙서 같은 청백리들의 삶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어설프게나마 다짐을 하게 되는 건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독서일 거고, 슬프게도 이 나이에는 참 힘들게 사는구나. 플러스, 당사자는 자기 주관대로 꿋꿋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이름을 남기면서 보람있는 생을 살지만 송나라 때를 제외하고는, 관리 녹봉으로는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박봉이었다던 중국 관료체제 아래에서 그 가족들의 고생은 어땠을지 등등 현실적인 측면에 자꾸 눈이 간다.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부패의 유혹에 빠지기 쉽도록 구성된 중국의 관리 제도와 그 보수 체제에 대한 의문도 책을 읽는 내내 많이 들었는데 후반부, 건륭제 때 국가의 수입을 능가하는 치부를 이뤘던 화신이라는 탐관오리에 관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그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탐관오리 짓이 일반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을 해야하고, 일단 탐관오리로 찍히면 패가망신을 한다는 위기감이 남아있던 -그렇다고 해도 나쁜 짓을 크게 덜 한 건 없지만- 명나라와 달리 청나라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치부가 나온 건 황제로 대표되는 국가와 탐관오리의 밀접한 공생 관계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해석을 저자는 하고 있다.
즉, 국고에서 신료들의 눈치나 비판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정이 필요했던 황제와 그 비자금 조성과 금고 역할을 할 간신이라는 결합이 노골화된 것이 청나라였다는 사실인데... 수백년 전 남의 나라 얘기지만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는 것인지. 요즘 역사책을 읽으면 역사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의 과거 버전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오싹오싹 돋을 때가 너무 많다.
대다수의 중국 역사책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황금기를 구가한 것으로 묘사되는 건륭제에 대한 저자의 냉정한 평가는 -소수의견인 것 같지만- 내게는 공감이 많이 갔다.
그리고 청나라가 판판이 깨지고 몰락의 원인이 됐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아편 전쟁'의 이면을 중국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다. 영국 배들이 불법적으로 실어온 아편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금지하고 압수했던 임칙서라는 인물의 역할. 그리고 겉으로는 신사의 나라를 가장하면서 아시아에서 온갖 깡패짓을 해온 영국의 그 더럽고 치사한 행각에 대해 읽으면서... 열이 또 확 받았다.
또 적절한 대처만 했다면 요즘 애들 하는 말로, '영국을 발라버릴 수도 있었던' 그 천우신조의 기회를 아편이 피우고 싶고, 또 아편 거래를 통해 얻어낼 이익을 위해 걷어차버린 청나라 지도층의 매국적인 행각을 보면서 망하는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아편 전쟁의 패배와 청나라의 급속한 몰락에 대해 서구의 역사책에서 조차, 초강대국이었던 중국이 불과 몇십년 만에 서구의 반식민지가 된 것은 불가사의라는 표현을 썼던데 중국의 국부나 국력은 그대로였지만 소위 윗대가리가 썩어버리니 어떻게 대처할 도리가 없지. 나도 황인종에 속하다보니 아시아의 역사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강도가 더 높긴 하지만 남의 나라 역사에 이렇게 공감해서 열 받아보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
한족의 통일왕조 중에 가장 힘없고 별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 송나라의 체제가 그래도 중국 역사 안에서는 그나마 합리적이고, 청렴한 관료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됐기에 청백리가 많았고 탐관오리가 적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는 국가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좀 유약하고 나약하다는 송에 대한 인식이 확 바꾸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마음만 먹으면 2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화끈하게 망쳐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집단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도 인간처럼 건강한 시기와 병이 드는 시기가 교차하고 그러다가 점점 노쇠하고 결국은 소멸한다는 그 진리를 대입해서, 잠시 앓는 시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최근 중국 역사가들의 책이 지나치게 중화주의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중국 안에서 사는 중국인이면서도 상당히 객관적으로 자기 국가의 역사를 보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는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 싶다. 목청껏 외치는 웅변보다는 이렇게 조근조근한 설득이 더 먹힌다는 걸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인 듯.
재미도 있고 꽤 여러가지 생각의 꼬리를 무는 책. 이래서 역사책을 읽으라고 하나보다.
그렇게 은행 순례를 다니면서 끝낸 책 중 하나. 끊긴 삘도 이을 겸, 또 혹시라도 하나 건지는 게 있으면 좋고~라는 심정으로 잡았는데 두 가지 목적에는 그다지 부합하지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중국 역사 속의 청렴한 소수의 관리와, 엄청나게 많은 탐관오리 중에 대표주자들이 소개된다. 청백리와 탐관오리 할 것 없이 어떤 시대에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에 대해 일대기 적으로 서술을 해주고 또 중요한 사건이나, 그의 행각에 촛점을 맞춰 중점적인 소개가 들어간다.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로 한국에도 유명한 송대의 포증, 풍도, 범증, 임칙서 같은 청백리들의 삶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어설프게나마 다짐을 하게 되는 건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독서일 거고, 슬프게도 이 나이에는 참 힘들게 사는구나. 플러스, 당사자는 자기 주관대로 꿋꿋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이름을 남기면서 보람있는 생을 살지만 송나라 때를 제외하고는, 관리 녹봉으로는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박봉이었다던 중국 관료체제 아래에서 그 가족들의 고생은 어땠을지 등등 현실적인 측면에 자꾸 눈이 간다.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부패의 유혹에 빠지기 쉽도록 구성된 중국의 관리 제도와 그 보수 체제에 대한 의문도 책을 읽는 내내 많이 들었는데 후반부, 건륭제 때 국가의 수입을 능가하는 치부를 이뤘던 화신이라는 탐관오리에 관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그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탐관오리 짓이 일반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을 해야하고, 일단 탐관오리로 찍히면 패가망신을 한다는 위기감이 남아있던 -그렇다고 해도 나쁜 짓을 크게 덜 한 건 없지만- 명나라와 달리 청나라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치부가 나온 건 황제로 대표되는 국가와 탐관오리의 밀접한 공생 관계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해석을 저자는 하고 있다.
즉, 국고에서 신료들의 눈치나 비판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정이 필요했던 황제와 그 비자금 조성과 금고 역할을 할 간신이라는 결합이 노골화된 것이 청나라였다는 사실인데... 수백년 전 남의 나라 얘기지만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는 것인지. 요즘 역사책을 읽으면 역사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의 과거 버전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오싹오싹 돋을 때가 너무 많다.
대다수의 중국 역사책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황금기를 구가한 것으로 묘사되는 건륭제에 대한 저자의 냉정한 평가는 -소수의견인 것 같지만- 내게는 공감이 많이 갔다.
그리고 청나라가 판판이 깨지고 몰락의 원인이 됐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아편 전쟁'의 이면을 중국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다. 영국 배들이 불법적으로 실어온 아편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금지하고 압수했던 임칙서라는 인물의 역할. 그리고 겉으로는 신사의 나라를 가장하면서 아시아에서 온갖 깡패짓을 해온 영국의 그 더럽고 치사한 행각에 대해 읽으면서... 열이 또 확 받았다.
또 적절한 대처만 했다면 요즘 애들 하는 말로, '영국을 발라버릴 수도 있었던' 그 천우신조의 기회를 아편이 피우고 싶고, 또 아편 거래를 통해 얻어낼 이익을 위해 걷어차버린 청나라 지도층의 매국적인 행각을 보면서 망하는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아편 전쟁의 패배와 청나라의 급속한 몰락에 대해 서구의 역사책에서 조차, 초강대국이었던 중국이 불과 몇십년 만에 서구의 반식민지가 된 것은 불가사의라는 표현을 썼던데 중국의 국부나 국력은 그대로였지만 소위 윗대가리가 썩어버리니 어떻게 대처할 도리가 없지. 나도 황인종에 속하다보니 아시아의 역사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강도가 더 높긴 하지만 남의 나라 역사에 이렇게 공감해서 열 받아보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
한족의 통일왕조 중에 가장 힘없고 별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 송나라의 체제가 그래도 중국 역사 안에서는 그나마 합리적이고, 청렴한 관료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됐기에 청백리가 많았고 탐관오리가 적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는 국가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좀 유약하고 나약하다는 송에 대한 인식이 확 바꾸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마음만 먹으면 2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화끈하게 망쳐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집단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도 인간처럼 건강한 시기와 병이 드는 시기가 교차하고 그러다가 점점 노쇠하고 결국은 소멸한다는 그 진리를 대입해서, 잠시 앓는 시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최근 중국 역사가들의 책이 지나치게 중화주의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중국 안에서 사는 중국인이면서도 상당히 객관적으로 자기 국가의 역사를 보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는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 싶다. 목청껏 외치는 웅변보다는 이렇게 조근조근한 설득이 더 먹힌다는 걸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인 듯.
재미도 있고 꽤 여러가지 생각의 꼬리를 무는 책. 이래서 역사책을 읽으라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