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되지 않는 전재산을 탈탈 털어넣을만한 좋은 기회가 생겼으나 여차저차 잠시일지 영원일지 물 건너간 허탈감을 사진을 올리면서 달래기 위한 포스팅.
31일에 본래 비프 웰링턴이나 아니면 뭐든 해서 먹을 예정이었는데 부친이 속병이 나서 골골 죽으로 연명하시는 터라 간단히 반찬가게에서 사온 밀푀유 나베 밀키트로 때운 덕분에 편하기는 했다. 정말 오랜만에 술 한잔 하지 않은 섣달 그믐날 밤이기도 했고.
2023년 첫 글은 작년 마지막 주에 먹은 기록~
25일에 교환 + 제사상에 올릴 뭔가 근사한 달다구리를 구하러 강남 신세계에 가서 발견한 레종 데트르의 루돌프 케이크. 레종 데트르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케키 하나 먹자고 서촌까지 달려갈 정도로 부지런한 인간이 못 되는 고로 남의 포스팅이나 사진만 봤는데 성탄 이벤트로 온갖 맛있는 케키집들을 신세계 지하에 모아 놓은 덕분에 마지막 남은 하나를 건졌다.
집에서는 절대 해먹을 수 없는 손이 무지막지 많이 간 고급스러운 초코 무스 케이크~ 초콜릿을 고급진 걸 써서 맛이 아주 풍부함.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땡겼는데 이걸로 충족. 근데... 옛날 같으면 이거 한판도 그 자리에서 다 해치울 수 있었는데 이 쪼끄만 거 하나로 만족하는 걸 보면 내 위도 진짜 늙었구나.
브레드 05의 크로와상과 오랜만에 삼청동 소샌드와 아마도 포트넘의 얼그레이던가 애프터눈 마지막 남은 걸 탈탈 턴 홍차. 작년엔 겨울이 춥지 않아서 티코지 거의 안 꺼냈는데 올해는 필수품임. 아니면 차가 너무 금방 식는다. 그래도 워머까지 안 꺼내도 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역시 25일에 신세계 지하에서 사온, 무슨 유명 타르트집의 피칸 타르트. 파이껍질이 요즘 유행하는 페스트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단단한 파이지라서 제일 마음에 들었고 피칸도 살짝 오버 베이킹을 해서 쌉쌀하니 내 취향~ 아래 필링과 사이에 초코 필링을 살짝 넣은 게 킥 포인트지 싶음. 제일 아랫층 필링은... 시나몬이 들어간 것 같은데 느끼한 다른 재료와 궁합을 생각하면 합리적이고 납득 가는 선택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어서 그건 좀 마이너스. 이걸 먹으니 피칸 파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29일에 라라맘앤김쌤 빵 클라스 가서 100% 호밀빵과 루스틱을 만들어온 다음 날의 동생과 내 아점. 동생은 회사라 두껍게 자른 고다 치즈에 금귤 콩포트를 올려 먹었고 난 냉털 샐러드에 염소젖 치즈를 얹어 작업실에서 얌냠~
내가 만들었(다고 쓰고 선생님이 70% 이상 했)지만 정말 맛있다. 간만에 제대로 진한 풍미를 폴폴 풍기는 호밀빵. 근데 맛이 엄청 강해서 어지간한 재료는 얘한테 묻힌다. 31일날 점심에 라끌렛 치즈 얹어서 구워 먹었는데 치즈 맛이 묻힐 정도. 루스틱과 녹인 라끌렛 치즈의 궁합은 최고였음.
치아바따 배웠을 때만 해도 하드빵은 그냥 집에 있는 무쇠 활용해서 적당히 구울까 했는데 얘를 먹으니 돌판 사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내년에 이사 가야 하는데 짐을 이렇게 마구 늘려도 되나 싶긴 한데... 고민 중. 일단 있는 거 먹고 돌판 필요없는 브리오쉬나 구워 먹으면서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