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안간 해가 부지기수였고 반지의 제왕 때문에 1년에 한번씩 갔던 것이 최근 몇년.
자막 읽기 싫어서 극장 안 간다는 어른들의 옛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데... ^^;
그런 의미에서 방화를 한편 때려줬다.
이벤트의 여왕 영*씨가 지난주에 이어 또 당첨된 시사회 표.
예전에 연극 팬들에게 엄청나게 회자됐던 연극 이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요즘 연극을 영화화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인데 일단 탄탄한 시나리오(희곡?)을 바탕으로 하니까 감독이 어지간히 망치지 않는 한 기본적인 플롯의 재미는 잡고 들어간다.
이 작품의 1차적 성공 원인은 인물 각각에 강렬한 성격을 부여하면서도 서로 튀는 부분 없이 꽉 짜게 이어놓은 캐릭터 설정과 구도. 연산, 장생, 공길, 녹수. 네명의 주인공 누구도 미워할 수 없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매료되게 만든다.
그 다음에는 적절한 배우들의 기용과 그들의 호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길 역을 맡은 이준기는 이 역할 때문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 모두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당연히 상당한 기대를 갖고 갔는데... 내 입장에서는 조금 더 중성적이고 조금 더 갈등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살짝꿍 아쉬움을 남겼음.
그가 가졌던 연산에 대한 감정, 장생에 대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렇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쉬움이지... 그 이상의... 어떤 요사스러움까지 흐르는 그런 계집남자는 인간의 머릿속 밖에선 불가능일지도...
내가 너무나 몰입했던 인물은 연산군. 조선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내가 유二하게 공감하고 좋아하는 인물.
얼마나 좋아했냐면 유인촌이 나왔던 연산일기라는 완전 쪽박난 영화까지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열심히 봐줬다. 좀 새는 얘기인데 국내 배우 중에 유인촌씨만큼 연산의 복잡다단함을 잘 보여주는 배우도 드물듯. 강수연과 이대근의 애로물이었던 그 연산군은 대략 분노. -_)
연산군을 맡은 배우의 연산도 오랜만에 공감 만빵. 엄청난 마더 컴플렉스와 파더 컴플렉스를 가진 인간의 거의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행태를 극명하게 표현했다. 하나만 갖고 있어도 인생이 힘든 판에 두개 다 갖고 있으니 사람이 제대로 풀릴 리가 없지. 그가 있었기에 공길도 장생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해야하나. 눈먼 장생과 살려놓은 공길의 마지막 광대극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장생은..... 글쎄.... 그 자체가 어떤 히어로적인 면모를 갖고 있기는 하나... 다면적 인간에 몰입하는 내 취향에는 좀 단선적인 느낌. 궁을 떠나려다 주저앉는 모습이며 초반 공길과 그의 관계에서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감우성을 보며 연기가 절대 늘지 않는 몇몇 배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강성연의 장녹수.
그렇게 많지 않은 출연 장면인데 저 정도로 밀리지 않는 자기 자리를 찾는 배우는 흔치 않다. 입만 열면 분위기를 팍팍 깨고 몰입을 방해하는 배우가 상당수인 현실에서 장녹수 캐스팅을 제대로 해준 것에 감사.
연산군의 어머니인 동시에 애인이고 누이였던 여자. 공길의 연적. 자살을 시도한 공길을 두고 자신을 찾아온 연산군을 치마에 받아주는 장면에 올인~ 그리고 반란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마지막 광대극을 지켜보는 모습에서 멋지단 생각을 했다.
내시 처선 역을 맡은 배우며 육갑 등등 조연진들도 상당히 탄탄.
아쉽다면 요즘 한국 사극 영화의 경향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맞지 않는 단어 선택과 대사. 제목이 왕의 남자지만 그래도 대사 중에 관리며 내시가 왕을 주상전하 등등이 아니라 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두번째는 중간에 뜬금없이 나타난 경극. 물론 나름대로 그게 하늘에서 펑 떨어진 게 아니라는 논리 구조를 만드려는 노력은 보였지만 부족했다. 감독의, 패왕별희에 대한 지나친 오마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때부터 갑자기 영화가 순수한 왕의 남자가 아니라 패왕별희와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건 기술적인 문제인데 극장 시스템의 때문인지 아니면 오디오 마스터링이 잘못됐는지, 그도저도 아니면 배우의 딕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대사가 뭉개져서 전달이 잘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대충 넘어가도 되는 부분은 모르겠지만 대사가 중요한 부분에서 그럴 때는 자꾸 고개가 갸웃. 특히 떼샷(^^;;;)에서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 그런 경우가 많았다. 아직 개봉 전이니 손을 한번 봐주는 게 좋을 듯 싶긴 한데... 이 의견은 전달할 방법이 없다.
마지막 아쉬움은 최후의 광대놀이 장면. 공길과 장생이 줄타기를 하며 공중에 뜬 것에서 마무리를 했다면 정말 화룡정점이었을텐데... 그 감동받을 수 있는 찐~한 여운이 느닷없는 광대놀이에서 그냥 푸시시식.
태풍과 파랑주의보는 절대 보지 말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이건 성공적인 선택이었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