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다큐 때문에 읽은 책들 중 하나~ 12일날 베자르 공연 보러 대전 갔다 온 다음날 읽었음.
갖고 가기엔 책이 너무 크고 글자가 너무 적었다.
다른 책들이 고려부터 조선, 혹은 일제시대까지 도자기에 중심을 뒀다면 이 책은 현대 한국 도자 찻잔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아마 한 100년 정도 흐른 뒤에는 내가 살았던 이 시기 찻잔의 성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역사 서적이 되리라 예상 되지만 실시간을 사는 현재 상황에서 내게 큰 쓸모는 없었다.
기록할 만한 찻잔과 그 찻잔을 만든 사기장에 관한 얘기가 엄청난 양의 사진과 함께 짤막짤막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찻잔에 얽힌 얘기나 에피소드, 사용자에 관한 얘기도 양념처럼 언급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화보집을 보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저자가 갖고 있는 기본 지식이 상당하기 때문에 단순한 도록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저 정도 지식과 찻잔에 대한 애정, 그리고 발로 뛰는 열정이 있었기에 탄생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됨. 아마 지금 우리 세대보다는 다음, 혹은 다음 다음 세대들이 더 고마워할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한 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괜히 좋은 찻잔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게 생김. 견물생심이라고 비록 사진이지만 -엄청 잘 찍었다. 탐이 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나 여유로움 등등의 아름다움을 갖춘 찻잔들을 보니까 나도 저런 찻잔을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하나가 되면 두개가 갖고 싶고... 계절에 맞는, 혹은 차에 맞는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겠지.
쓰는 김에 옆길로 좀 새는 얘기 하나.
솔직히 난 차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몇년 전 신정희 옹에 관한 다큐를 하면서 찻잔에 대해 어설프나마 눈을 떴다고 해야하나? 객관적인 수준은 모르겠고 그냥 내 나름의 좋고 싫음의 취향은 가졌다. 그러나... 대충 개당 몇만원 정도만 투자하면 크게 딸리지 않는 수준의 결과를 얻는 서양 찻잔에 비해 우리 찻잔은 눈과 내 능력차가 너무 심함. ㅠ.ㅠ
이건 솔직히 명성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 도자기 배우기 시작한 아는 디자이너가 작년에 자기 선생님 작품이라고 말차 사발과 숙우를 선물했는데... 선물한 사람 앞에서 미안한 얘기지만 걔가 자기가 쓰려고 직접 만든 사발하고 바꿔달라는 말이 혀 끝까지 나왔었음. ㅎㅎ;;;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더 나을지 몰라도 조선 사발의 매력으로 치는 굽에 유약 흘러내림을 억지로 연출한 것이 너무나 보여서... 자연스러움 안에 녹아내린 연출이 아니라 덕지덕지 화장 떡칠한 여자를 보는 느낌이라...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판매상들의 취향을 몰라서인지 걔가 만든 것은 유약의 흘러내림이 너무 자연스럽고 좋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눈과 마음에 쏙 들어오는 내 찻잔에 대한 갈증이 잠시 고조됐다가....(아는 게 병이라고 이 책을 보면서 이름도 지어주고 싶었음. ㅎㅎ;;;) 현재는 진정된 상태. 봄에 광주요에서 백자 찻잔을 2개 사는 것으로 대충 달랬다. 어차피 난 말차보다는 역시 맑은 잎차파니까.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조선 사발은 동생이 오차즈께 그릇으로 애용중. -_-;;;; 사이즈며 깊이가 딱이라나 뭐라나... 조선 사발이 일본에서 일반화가 되면서 일본에서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을까.
나중에 도자기 배우게 되면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 만들어 주겠다는데 과연??? 나와 달리 손재주는 있는 인간이니 기대를 해봐야겠지.
본론으로 돌아와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면... 찻잔에 대한 욕심을 확확 치솟게 하는 책이다. ^^
나는 실용과 인문을 놓고 분류를 어디에 놓아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판매 사이트를 보니 예술에 있어서 예술로 택했음.
책/예술
찻잔 이야기
박홍관 | 이레디자인 | 2005년 2월 13일